경험치 랭킹
-
1위
쿠퍙퍙잉
200P
-
2위
장원영
200P
-
3위
TEST
100P
-
4위
gamestop123
100P
-
5위
킹왕
100P
-
6위
다정
100P
-
7위
사나
100P
-
8위
냥파스
100P
-
9위
소소노
100P
-
10위
sada
100P
리그별팀순위
축구
야구
농구
배구
- EPL
- 분데스리가
- 프리메라
- 세리에
- 리그1
- 에레디비지에
- K리그1
- 퓨처스
- KBO
- MLB(NL)
- MLB(AL)
- NPB(CL)
- NPB(PL)
- KBL
- NBA(동부)
- NBA(서부)
- WKBL
- 남자배구
- 여자배구
[뉴스]브라질의 전설 오스카 슈미트 별세… 또 하나의 별이 지다
조회 2회
|
댓글 0건
99
RKTV
2시간전
[뉴스]브라질의 전설 오스카 슈미트 별세… 또 하나의 별이 지다
99
RKTV
2시간전
2
조회수
0
댓글

[루키 = 이동환 기자] 브라질의 영웅, 오스카 슈미트가 세상을 떠났다.
ESPN 등 주요 외신은 20일(이하 한국시간) 올림픽 농구 역대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인 오스카 슈미트가 향년 6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슈미트의 유가족은 성명을 통해 그가 지난 15년 동안 뇌종양과 투병해 왔으며, 마지막까지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고 삶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다고 전했다.
'성스러운 손(Mão Santa)'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슈미트는 1980년 모스크바 대회부터 1996년 애틀랜타 대회까지 총 5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통산 1,093점을 기록한 전설이다. 이는 올림픽 농구 역사상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미국의 케빈 듀란트(518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경기당 평균 42.3점이라는 경이로운 득점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슈미트는 NBA 무대를 밟지 않은 역대 최고의 선수로도 손꼽힌다. 1984년 드래프트 당시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에 지명되었으나, 당시 NBA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했던 규정 때문에 브라질 국가대표 자격을 유지하고자 미국행을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2013년 농구 명예의 전당 입성 당시 “NBA에서 한 경기라도 뛰었다면 국가대표팀에서 다시는 뛸 수 없었을 것“이라며 조국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1987년 인디애나폴리스 팬암 게임 결승전이다. 당시 슈미트는 대학 유망주들로 구성된 미국을 상대로 46점을 폭격하며 20점 차 뒤지던 경기를 뒤집고 브라질에 금메달을 안겼다. 이 경기는 미국 농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패배 중 하나로 기억된다.
과거 이탈리아에서 성장하며 슈미트의 경기를 지켜봤던 고(故) 코비 브라이언트는 그를 덕 노비츠키와 비교하며 “어린 시절 슈미트가 어떻게 45점, 47점을 득점하는지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선수였고 엄청난 열정으로 경기에 임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마르코 안토니오 라 포르타 브라질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브라질 스포츠는 위대한 이름을 잃었지만, 슈미트의 이야기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성적과 메달 그 이상의 가치인 헌신, 극복, 존중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대변했다“라고 애도했다.
세계를 호령했던 위대한 슈터는 코트를 떠났지만, 그가 남긴 1,093점이라는 대기록과 농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다음 세대 선수들에게 영원한 이정표로 남게 됐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