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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원석연의 더 멘트] 위대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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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전

[뉴스][원석연의 더 멘트] 위대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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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 원석연 객원기자] “제발 버텨줘라… 앞으로 못 써도 되니까 어떻게든 오늘 하루만, 제발 오늘만 버텨줘라…“


지쳐 있었다. 시즌 막판 연쇄적으로 발생한 부상으로, 절반에 가까운 선수가 이탈한 우리은행은 KB스타즈와 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두고 분명 지쳐 있었다. 1차전 27점차 대패, 2차전 24점차 대패 그리고 맞이한 3차전. 주장 김단비는 자신의 무릎을 붙잡고 오늘만 버텨달라며 혼잣말을 되뇌었다.


“처음 다친 건 브레이크를 마치고 신한은행과 경기였어요. 전반에 점프를 뛰고 착지를 하는데 뚝하고 어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원래 몸 어디든 안 아픈 곳이 없어서 이번에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통증이겠거니 하고 뛰었는데 날이 갈수록 점점 아파져서... 정확한 부위는 무릎은 아니고 비복근(무릎부터 발목까지 이어지는 종아리 근육)쪽인데 원인이나 병명은 정확히 몰라요. 아직 검사도 안 해봤어요. 어차피 뛰어야 되는 거 아니까.“(웃음)


한눈에 봐도 걷기조차 힘든 몸 상태. 이미 1차전부터 제 기능을 상실한 다리였지만, 김단비는 경기 전 애국가를 들으며 제발 오늘 경기만은 버텨 달라며 하늘에, 아니 자신의 무릎을 향해 기도했다.


“오늘 지면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웃음) 사실 이번 시즌 시작할 때부터 오늘 경기 전까지 감독님은 선수단한테 그런 얘기를 한 번도 안 하셨어요. 정말 한 마디도 안 하셨는데 저희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죠. 시즌 막판에도 그렇고 플레이오프 때도 그렇고 분명 지금 방방 뛰면서 화를 내실 타이밍인데 왜 힘 없이 조용히 계시지? 하는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오늘만 버티자고, 감독님 이렇게 보내기 싫으니 한 경기라도 더 치르게 해드리고 싶다고, 오늘만 버티자고 했는데…“


그러나 하늘은 김단비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했다. 1쿼터 중반, 오른다리 전체를 테이프로 칭칭 감은 채 교체로 코트에 들어선 김단비는 몇 초 뒤 자신의 무릎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팀이 0-6으로 지고 있는 5분여께. 박지수를 앞에 두고 돌파를 통해 골밑 득점을 올리며 팀의 첫 득점을 기록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드라이브 인을 위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 김단비는 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오늘이 감독 위성우와 함께하는 마지막 경기라는 것을.








“그만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었던 건 딱 2년 전이었어요.“ 위성우 감독이 회상한다.


“(김)정은이가 나갈 때부터 해서 (박)혜진이도 나가고 (최)이샘이, (나)윤정이도 나가고… (박)지현이는 뭐 도전에 대한 꿈이 있다고 하며 나가긴 했지만… 그렇게 선수들이 한꺼번에 FA로 떠나갔던 여름에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프로에서 우승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같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우승을 아무리 해도 선수들이 다 나갔잖아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이건 내 잘못이다. 내가 문제가 있구나 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오래 했다. 그만할 때가 됐다 싶더라고요. 많이 힘들더라고.“(웃음)


그해 여름, 그렇게 위 감독은 이미 마음속으로 사직서를 완성했지만 사직서를 끝내 구단에 보낼 수 없었다. 박혜진도 없고 최이샘도 없고 박지현도 없고 나윤정도 없는 황량한 로스터. 내가 만약 지금 이렇게 물러난다면, 후임으로 부임할 감독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된다. 선수들이 다 나 때문에 나갔는데 내가 구단을 버리고 떠나면 그건 비겁한 짓이다. 위 감독은 생각했다. 그래, 이 멤버로 1년만 더해서 어떻게든 다시 살려놓자. 그리고 물려주자.


그렇게 1년 뒤, 위 감독의 우리은행은 그 황량한 로스터로 정규리그 21승 9패 7할 승률로 우승을 차지한다. 김단비는 서른다섯살의 나이로 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고, 이명관은 어엿한 팀의 2옵션이 됐다. 한엄지는 데뷔 후 가장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냈고, 이민지는 혹독한 조련 속에 언제 어디서든 슛을 던질 수 있는 담대한 심장을 루키 시즌에 장착했다. 누구도 예상 못한 우리은행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던 순간, 위성우 감독은 외로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됐다.








“그렇게 우승을 하고서 구단에 얘기를 했어요. 이제 그만두겠다고. 챔프전에서는 아쉽게 졌지만, 사실 선수들에게도 너무 고마웠고 이 정도면 전 코치도 감독돼서 부담이 좀 덜 되겠구나 싶었거든. 그래서 이야기를 했는데…“


하지만 위 감독의 사직서는 반려됐다. 회사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 한 시즌에 FA 4명을 놓친 로스터로 우승을 시킨 감독이 내는 사직서를 수리할 단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구단의 계속된 만류로 위 감독은 1년 더 우리은행 지휘봉을 잡게 된다. 하지만 농구의 신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작년에 1등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또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아니었던 거지. 여름 때까지만 해도 선수들이 이렇게 많아?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즌 시작하자마자 경기 때나 연습 때나 선수들이 하나둘씩 다 쓰러졌어요. (편)선우나 나나미나, 명관이나… 이게 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내 욕심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던 찰나에…“


“그렇게 생각이 참 많을 때였는데 마지막으로 민지가 다쳤을 때, 그땐 정말 멘붕이 왔어요. 그래서 그때 단장님을 찾아가 이번 시즌까지만 하겠습니다하고 다시 말씀드렸어요. 단장님은 또 만류하셨고. 시즌 치르다 보면 당연히 부상자는 나올 수 있고, 성적도 안 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래서 제가 성적 때문도 아니고 하루 이틀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하고 신중히 검토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어요. 무엇보다 이제 내가 빠져줘야 우리은행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거니까. 내가 여기에 14년을 있었는데, 이 팀에 저만큼 애정이 있을 사람이 있을까요?(웃음) 제가 하면서 올해 떨어졌지만, 전 감독이 다시 잘 이끌어서 또 우리의 시대를 만들어야 할 때니까요. 그렇게 단장님께 말씀드리고 와서 전 코치한테 나 이제 안 할 거야 했는데 안 믿더라고.(웃음) 맨날 힘들다 힘들다 하니까 또 앓는 소리로 들었던 거지.“








14년간 우리은행에서 14번의 플레이오프, 10번의 정규리그 우승, 8번의 챔프전 우승, 6번의 통합 우승. 통산 340번의 정규리그 승리와 36번의 포스트시즌 승리. 2016-2017시즌 33승 2패 94.3%로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고 승률 기록과 더불어 정규리그 통산 승률은 무려 75.2%.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할 아득한 산을 세우고 떠나는 위대한 감독이지만, 그에게도 후회는 남는다.


“제가 윽박지르고, 화 내고 이런 것들 많이 싫어하셨던 것도 다 압니다.“ 위 감독이 담담히 얘기한다.


“다른 뜻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애들이 제가 생각해도 정말 힘들게 운동하고 열심히 따라온 걸 알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최고의 보상은 선수들이 코트에 나갔을 때 제가 승리를 안겨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감독으로 왔을 때 우리 팀이 꼴찌였으니까, 아마 그때부터 저도 모르게 팀을 타이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강박이 더 심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이런 말은 저도 처음 해보는데… 저도 제가 선수들한테 왜 이렇게 화를 낼까 이해가 안 되서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유명한 스포츠 정신과 원장님한테 가서 한 6개월 동안 상담을 받았어요. 그런데 효과가 없어. '아, 고치기 어렵구나' 싶었죠. 저도 사실 제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서 TV로 저희 경기를 못 봤어요. 변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팬들인 가족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마음이고…“


“또 하나 가장 후회스러운 건… 이렇게 갈 때가 되니까 저를 거쳐간 수많은 선수들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단비나 혜진이, 임(영희) 코치처럼 잘했던 선수들보다 제가 기회를 못 주고 못 챙겨준 선수들이 자꾸 생각나서 후회도 많이 되고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똑같이 운동하는데 아니 더 열심히 하는 선수들도 많았는데 기회를 못 줘서 저도 참 미안해서 눈을 못 마주쳤거든요. 그렇게 묵묵히 해준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서 정말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어요.“








누군가는 그를 독사라 불렀고, 누군가는 대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감독 위성우가 21년의 벤치를 뒤로 하며 남긴 마지막 유산은 수많은 우승 반지도, 아득한 통산 승률 따위의 숫자가 아니다. 그가 아산에 남긴 마지막 유산은, 망가진 다리로 스승의 마지막을 막고자 했던 제자의 눈물이었다.


“사람들이 감독님 독사라고 부르죠?“ 유승희가 감독 위성우를 추억한다.


“제가 우리은행에 오고 첫 경기에서 십자인대를 다쳤잖아요? 그날 숙소에 와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감독님이나 구단이 저한테 기대한 게 있으니까 이렇게 데려왔을 텐데, 뭘 해보지도 못하고 첫 경기에 그렇게 다쳐서 시즌아웃이 됐으니까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펑펑 울고 있는데, 감독님이 옆에 오셨어요. 그래서 울면서 감독님을 봤는데, 갑자기 감독님도 같이 우시더라고요. 자기 탓이라고…(웃음) 밖에 있을 땐 몰랐는데,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감독님이.“


제발 오늘만 버텨달라던 김단비의 기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고, 우리은행은 3차전에서 26점차로 패했다. 위성우 감독의 마지막 경기는, 아니 위대인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어떤 퇴장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남겨지는 것이라는 걸. 대인의 위업은 여기까지.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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